2016. 11. 19. 공연소감입니다.


오늘 한 분의 대가를 만났다.
오후 2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정경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6곡 전곡 콘서트
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니 무대가 휑하니 텅 비어 있어서 낯설다. 정말 무반주네.
바이올린 무반주 콘서트는 처음인데, 재미있을까..


정경화가 느릿느릿 들어온다. 빈 넓은 무대에 혼자 서니 왜소해보인다. 
연주가 시작된다. 소리가 조금 작게 들린다.


그런데 곧 홀에 소리가 꽉 차기 시작한다. 마치 앞서 지나간 음이 없어지지 않고 홀 여기저기를 채우는 듯 하다. 정경화의 모습도 점점 커져 간다.
반주 없이 바이올린 소리만 있으니 음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눈을 감으면 음이 보이고, 눈을 뜨면 정경화가 보인다.


2곡을 마친 후 휴식을 할 때, 엉뚱하게 어제의 변론이 생각난다.
오늘의 연주가 2시간 정도인데, 나도 어제 내리 2시간 10분 동안 한 사람을 위한 최후변론을 했다. 법정안 사람들을 나름 몰입시켰다고 혼자 생각하면서...


점점 몰입도가 높아진다. 객석에서 악장간 헛기침 소리마저 없어졌다.
빠르다가 느리고 느리다가 빠르다. 빠름 다음에 오는 느림이라서 좋고, 느림 다음에 이어지는 빠름이라서 아름답다.
약함과 강함, 경쾌함과 무거음, 옅은 미소와 단오함도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내가 곡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같은 선율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변화는 있으되 큰 차이는 아니고, 교향곡 같은 클라이맥스는 없다. 
그러면서 활은 쉼 없이 움직이고 왼손가락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불현듯 드는 생각, 
이 곡은 우리의 시간을 보여주는 곡이구나. 삶을 말해주고 있구나.
그 오랜 세월을 지켜온 정경화이기에, 손가락 부상을 딛고 일어선 정경화이기에 이 곡을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구나. 젊은 연주자는 이 곡을 연주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68세의 연세에 걸맞게, 무대에 들어오고 나갈 때 비틀거리는 듯이 천천히 걸으시는데, 막상 연주에 들어가더니 악보 없이 2시간 넘도록 홀을 꽉 채우면서 객석을 사로잡은 연주를 하신다. 홀 안의 다른 모든 것들이 멈추어 있는 채 그 분의 움직임과 소리만 있는 광경이다.


연주가 끝난 후 기립박수하는 객석에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너무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두 팔로 큰 하트를 그려서 날려보내는 모습은 덤이다.
정말 벅찬 감동이다. 눈물이 핑 돌려 한다.
아이고 어제 내 변론은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텐데...


집에 있는 그 분의 CD를 찾았다. 87년 발매된 Con Amore, 90년대 초반에 사서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발매된 바흐 음반의 사진과 비교해본다.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Posted by 이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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