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수필 나와의 대화

기술의 발전과 글 쓰기의 미래

이응세 2014. 3. 13. 19:41

기계와 컴퓨터가 글을 쓰는 시대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저작물에 대한 정의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다. 


저작물의 정의라는 것이 객관적 진리라고 할 수 없으니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저작물의 정의에 의문을 품게 하는 시발점은 단순한 정의의 문제를 넘어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명한 비즈니스 잡지인 Forbes의 웹사이트에는 Narrative science라는 코너에 글이 지속적으로 게재되는데, 이 글들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쓴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Narrative science 회사의 Quill이라는 프로그램이 쓰는 글들이다.


컴퓨터가 쓴 글이라고 해서 매우 엉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필자처럼 영어에 능통하지 않는 사람은 이 글을 사람이 썼는지 컴퓨터가 썼는지 구분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컴퓨터가 글을 쓴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8년에 러시아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쓴 True Love라는 소설이 발표되었고, 꽤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까레리나의 캐릭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저작물이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가 쓴 글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저작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가볍게 결론지어 버릴 수도 있겠으나, 이는 손쉽게 문제를 피하려는 것일 뿐 해결책은 아니다.

 

컴퓨터가 쓴 글은 전혀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 혹자는 컴퓨터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글 쓰는데 필요한 틀이나 문체를 사람이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컴퓨터는 이를 그대로 사용하였을 뿐이므로,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이라도 그에 사용되는 언어와 단어는 대부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며, 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창작 활동도 지구상에 없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 기존의 문화유산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바라보는 활동임을 생각한다면,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해서 컴퓨터보다 항상 우월한 창작성을 갖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컴퓨터로 인한 저작물, 사회적‧법률적 의미 모호


사람이 쓴 글인지 컴퓨터가 쓴 글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엔씨소프트가 2003년 7월에 발표한 ‘스토리헬퍼’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기존의 시나리오 데이터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항목별로 본인이 원하는 항목을 선택하면 본인이 원하는 구조의 샘플이 탄생하고, 사람은 이 샘플을 수정하여 자신의 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 경우 어디까지가 사람이 쓴 글이고 어디까지가 컴퓨터가 쓴 글이며, 어떤 부분은 보호되어야 하고 어떤 부분은 보호될 수 없는 것일까? 컴퓨터의 힘을 빌려 글을 쓰는 상황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창작과 저작물의 사회적, 법률적 의미에 대하여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쓴 글에 창작성이 있는지, 그 글이 저작물로써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학문적 관심보다 더 절실한 고민은 사실 따로 있다.

 

글 쓰는 이들은 글 쓰는 일이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산업사회에서 자동화가 인간의 작업영역을 침범하는 흐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로 생각하였을 것이며, 체스를 하는 컴퓨터가 인간 체스챔피언과 자웅을 겨루는 것을 보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보았을 뿐이다.

 

글쓰기, 컴퓨터와 차별되는 부분 찾아야

 

로봇이 인간을 닮아가는 각종 영화와 소설들을 보면서도 그 로봇의 역할이 창의적인 영역까지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가 신문기사를 쓰고 소설을 쓰는 상황에서 이제 글 쓰는 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컴퓨터보다 더 좋은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컴퓨터가 담지 못하는 무엇이 담긴 글을 써야 컴퓨터가 쓴 글들 속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창의적인 분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글쓰기에서조차 이제 컴퓨터와 차별되는 부분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신문기사나 소설이 아닌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이들도 안심할 수 없다. 법률가가 쓰는 판결문이나 준비서면들은 신문기사나 소설과 달리 컴퓨터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법률가의 글은 한 단어, 한 문장마다 가치판단을 담고 있으므로 절대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여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충분할까? 기술은 항상 우리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을 대신하여 왔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글 쓰는 이들로서는 우리의 글쓰기를 앞으로도 컴퓨터가 절대 대신할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보다 컴퓨터가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훨씬 안전하고 현명한 생각이다. 컴퓨터가 절대 따라할 수 없도록 한 단어 한 문장에 깊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쓴 글에 가치를 담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글 쓰는 모든 이들에게 컴퓨터의 글쓰기를 두려워하라고 호들갑을 떨기는 너무 앞서나갔다. 차분하게 다시 마음을 다잡아 생각해보면, 글 쓰는 이들이 자신의 글에 자신만의 가치를 담아야 할 필요성은 비단 컴퓨터의 글과 비교될 장래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글에 가치를 담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계속하고 있지만, 이를 가끔 잊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가 글을 쓴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가 가끔 잊었던 것, 자신의 글에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점을 새삼스레 되새겨 보는 소득을 얻었다.